부더이 라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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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더이 라슬로는 헝가리의 축구 선수로, 선수 시절 4번의 헝가리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페렌츠바로시 TC 소속으로 1949년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후 부다페스트 혼베드 FC로 이적하여 3번의 리그 우승과 미트로파컵 우승을 추가했다. 헝가리 국가대표팀에서는 1949년 데뷔하여 39경기 출전 10골을 기록했고, 1952년 올림픽 금메달, 1953년 중앙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1954년 FIFA 월드컵 준우승, 1958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윙어로서 코치시 샨도르와 함께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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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더이 라슬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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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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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정보 | |
본명 | 라슬로 베드나리크 부더이 |
출생일 | 1928년 7월 19일 |
출생지 | 부다페스트, 헝가리 |
사망일 | 1983년 7월 2일 (향년 54세) |
포지션 | 윙어 |
유소년 경력 | |
연도 | 1942–1947 |
클럽 | BRSC |
클럽 경력 | |
연도 | 1947–1948 |
클럽 | Huttler Olaj SC |
연도 | 1948–1950 |
클럽 | 페렌츠바로시 TC |
연도 | 1950 |
클럽 | ÉDOSZ |
연도 | 1951–1961 |
클럽 | 혼베드 |
국가대표 경력 | |
연도 | 1949–1959 |
국가대표팀 | 헝가리 |
출전 | 39 |
득점 | 10 |
감독 경력 | |
연도 | 1962–1967 |
클럽 | ETI SC |
연도 | 1967–1980 |
클럽 | Kossuth KFSE |
메달 | |
올림픽 게임 | 1952 헬싱키: 금메달 |
FIFA 월드컵 | 1954 스위스: 은메달 |
2. 클럽 경력
부더이 라슬로는 선수 시절 헝가리 리그에서 총 4회 우승했다. 페렌츠바로시 TC에서 1회(1949년), 혼베드에서 3회 우승을 차지했으며, 혼베드 소속으로 미트로파컵에서도 우승했다.[2]
2. 1. 페렌츠바로시 TC
부더이 라슬로는 선수 시절 헝가리 리그에서 4번 우승했다. 첫 번째 우승은 1949년 페렌츠바로시 TC에서 달성했으며, 당시 졸탄 치보르, 샨도르 코치시와 함께 뛰었다. 1949년 1월 헝가리가 공산 국가가 되면서 페렌츠바로시는 우익 및 민족주의 전통 때문에 육군 또는 경찰 클럽이 되기에 부적합하다고 여겨졌다. 대신 식품 노동자 연합인 ÉDOSZ에 인수되었고, 부더이, 치보르, 코치시를 포함한 최고 선수들은 육군 팀인 혼베드로 징집되었다.2. 2. 부다페스트 혼베드 FC
부다이는 페렌츠바로시 TC에서 1949년 첫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졸탄 치보르, 샨도르 코치시와 함께 뛰었다.[2] 1949년 1월 헝가리가 공산 국가가 되면서 페렌츠바로시는 우익 및 민족주의 전통 때문에 육군 또는 경찰 클럽으로 부적합하다고 여겨져 식품 노동자 연합 ÉDOSZ에 인수되었다. 부다이, 치보르, 코치시 등은 육군 팀 혼베드로 징집되었고,[2] 여기서 부다이는 3번의 리그 우승과 미트로파컵 우승을 추가했다.[2]3. 국가대표 경력
부더이 라슬로는 1949년 5월 2일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헝가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1959년 은퇴할 때까지 국제 A매치 39경기에서 10골을 기록했다.[2] 1958년 FIFA 월드컵 스웨덴 대회에도 대표팀 멤버로 선출되었으나, 출전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3. 1. 매직 마자르의 일원
부더이 라슬로는 1949년 5월 2일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6-1로 승리하며 헝가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1] 이 경기는 중앙 유럽 선수권 대회였다.[2] 이후 헝가리 대표팀에서 39경기에 출전하여 10골을 기록했다.[1] 1950년 9월 24일 알바니아와의 경기에서는 4골을 넣어 12-0 대승을 이끌었다.[2]1950년대 매직 마자르라고 불린 헝가리 대표팀의 일원이었던[2] 부더이는 뚱뚱한 체형에도 불구하고 정력적이고 용감한 플레이가 특징이었다. 대표팀에서는 스트라이커 코치시 샨도르와의 콤비네이션 플레이를 특기로 하는 윙어로 활약했다.[2]
1952년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2] 1953년 중앙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에 기여했으며,[1]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6-3 승리를 거둔 헝가리 팀의 일원이었다.[1] 1954년 FIFA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과의 조별 예선 경기(9-0 승)와 우루과이와의 준결승전에 출전했다.[1] 준결승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결승전에서는 푸스카스 페렌츠에게 자리를 내주었다.[1] 1958년 FIFA 월드컵에서는 두 경기에 출전했다.
3. 2. 플레이 스타일
1950년대에 매직 마자르라고 불린 헝가리 대표팀의 일원으로, 뚱뚱한 체형에도 불구하고 정력적이고 용감한 플레이가 특징이었다. 대표팀에서는 스트라이커를 맡은 코치시 샨도르와의 콤비네이션 플레이를 특기로 하는 윙어로 활약했다.[2]4. 수상 경력
팀 | 대회 | 우승/준우승 | 시즌 |
---|---|---|---|
헝가리 | 올림픽 | 우승 | 1952년 |
중앙 유럽 컵 | 우승 | 1953년 | |
월드컵 | 준우승 | 1954년 | |
페렌츠바로시 TC | 헝가리 챔피언 | 우승 | 1949년 |
혼베드 FC | 헝가리 챔피언 | 우승 | 1952년, 1954년, 1955년 |
미트로파 컵 | 우승 | 1959년 |
4. 1. 국가대표팀
1950년대에 매직 마자르라고 불린 헝가리 대표팀의 일원이다.[2] 뚱뚱한 체형에도 불구하고 정력적이고 용감한 플레이를 특징으로 하며, 대표팀에서는 스트라이커를 맡은 코치시 샨도르와의 콤비네이션 플레이를 특기로 하는 윙어로 활약했다.헝가리 대표팀 선수로서, 1949년 5월 2일의 중앙 유럽 선수권 대회,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대표팀 데뷔를 하였으며,[2] 1959년에 은퇴할 때까지 국제 A매치 39경기 출전 10득점을 기록했다.[2] 1950년 9월 24일의 알바니아전에서는 4득점 (경기는 12-0으로 헝가리 승리)을 기록했다.[2]
매직 마자르의 일원으로서 1952년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 1953년의 중앙 유럽 선수권 우승에 기여했으며, 1953년에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친선 경기에 출전했다. 1954년의 FIFA 월드컵 스위스 대회에서는 1차 리그의 대한민국전, 준결승의 우루과이전에서의 현저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결승전에서는 푸스카스 페렌츠의 후보가 되었다.
1958년의 FIFA 월드컵 스웨덴 대회에서도 대표팀 멤버로 선출되었지만,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4. 2. 클럽
1948년 페렌츠바로시 TC로 이적했고, 1949년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2] 1951년 동료 치보르 졸탄, 코치시 샨도르와 함께 부다페스트 혼베드로 이적하여 리그 3회 우승(1952년, 1954년, 1955년)과 미트로파 컵 1회 우승(1959년)을 달성했다.[2]팀 | 타이틀 | 시즌 |
---|---|---|
페렌츠바로시 TC | 헝가리 챔피언 | 1949년 |
혼베드 FC | 헝가리 챔피언 | 1952년, 1954년, 1955년 |
미트로파 컵 | 1959년 |
참조
[1]
웹사이트
László Budai
https://www.olympe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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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Budai II (Bednarik) László (1928-1983)
http://www.sportmu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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